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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ㅃㄱㄲㄹㅁㄷㅈ

헤어질 결심(Decision to Leave, 2022)에 트와이스! 두 번 물렸어

by 나탈리와맷데이먼 2025. 10. 17.

물린 영화에 왜 또 스스로 물렸냐 하면.

처음 물렸을 때의 그 아스라한 고통을 재차 물림으로서 분노로 승화하고 싶었기 때문이다.

 

내 기억이 정확하다면 '트와이스! 두 번 물렸어..' 이 대사는 퇴마록 세계편 왈라키아의 밤 에피소드에서

성 감옥에 갇혀있는 윌리엄스 신부님을 준후가 발견했을 때의 신부님의 대사이다.

자그마치 흡혈귀에게 두 번이나 물렸다며 준후에게 하소연하는 장면인데, 

개봉하고 얼마 후,

그리고 최근에 한 번 더 물린 영화를 어떻게 표현해볼까 싶어 써 보았다는 뻘소리를 하고 싶었다.

 

 

 

 

 

박찬욱 감독님은 이제 거의 자기만의 세계로 많이 빨려들어간 것 같다.  

감독님이 직접 '대중적'이라는 단어를 언급했기에 하는 말인데

대중적인 영화라고 보기에는 너무 뻔하고 재미가 없다.

 

이렇게 만들어놓고 대중성을 바라셔? 

요 몇 년간 국내 영화판이 개판이라서 이해는 가지만 감독님은 한국영화는 정말 안 보시나 보다.

어쩌면 국내 영화판이 개판이니까 이런 거 딱 내보내면 히트치겠지 싶었던 걸까?

뻔한 스토리를 영화적 장치만으로 풀려고 하지 않았으면 좋겠다. 

몇 년 후에는 아예 미장센으로만 영화를 만드시진 않을까 내심 궁금해지기도 한다.

 

미장센? 상징과 기호? 은유? 난 이제 이런 류의 영화가 싫어진 게 분명해.

엘든링 초회차의 기분이 이랬을까. 아이템 툴팁 읽으면서 또 끼워맞추기 해야 되나 싶은 기분이다.

엘든링은 뭔가 웅장하게 떠오르는 막연함에 설레는 맛이라도 있었다. 그나마 텍스트로 받쳐주니까.

장담하는데 이 영화 한 번 보고 저 미장센 어쩌구 은유 어쩌구 알아챈 사람 없다.

그리고 다른 사람의 해석을 보고 말하지 않는 이상 그마저도 다 해석이 백만가지일 것이다.

 

좋은 영화 두 번 세 번 백 번 봐도 좋은 거 아니냐 말들 하지. 당연하지. 맞는 말이다.

초회차에 재미있게 봤을 때. 가 조건이다. ㅋㅋ

어느 한 구석은 거지같았어도 어떤 한 구석이라도 흥미있었던 부분이 있으면 재관람이 가능하다.

이 영화에 어떤 매력도 느끼지 못했다. 그 아름다운 탕웨이조차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재관람을 하며 그 미장센 어쩌구와 은유 어쩌구를 다시 짚어보고 싶은 생각조차 들지 않을 정도로

기본적으로 이 영화는 재미가 없다. 

 

왜 이렇게 미장센 어쩌구를 뭐라뭐라 하고 있냐 하면. 

거의 90퍼센트의 블로그 비평에서 미장센의 평가가 대다수를 차지하기 때문이다.

스토리 부분의 비평들도 자기들마다의 감정이입이 춤을 춘다.

뭐 대중예술이라는 게 사실 당연히 그런 것이다. 그래. 감정이입이 안 되면 예술이라고 할 수 없지. 

근데 좀 과해. 뭐 변증법적 어쩌구 하는 분도 계시던데, 내 생각엔 과해..

정말 평범한 스토리에 미장센에 취함으로 감정이입과 의미부여를 과도하게 진행시킨 탓이라고 본다.

 

내가 궁금한 건. 대체 어떻게 이 스토리에 감정이입이 가능한지에 관한 부분이다.

뻔한 이야기 아닌가 정말? 난 다른 블로거 분들의 리뷰를 읽으면서

난 내가 정말 사랑이라는 것에 대한 감성이 이렇게 부족한가 싶어 가슴이 철렁 내려앉았다.

 

노래 만들 때 가사를 먼저 쓰고 만드는 경우가 있듯이, 

대사를 미리 만들어 놓고 스토리를 짜 맞춘 느낌이다.(가사 먼저 쓰는 게 나쁘다는 얘기는 아니다)

이렇게 말하면 좀 이상한데, 대사도 미장센에 한 축에 속해있는 느낌이다. 내 기준엔 작위적이다.

스토리의 전개를 위한 대사가 아닌 장면을 아름답게, 있어보이기 위한 대사라는 기분이 강하게 든다. 

 

그래. 

불륜 미화는 아니다. 절대.

하지만 '단지 소재로 사용했다' 라는 변명으로 이 영화의 완성도에 대한 비판을 피해갈 수는 없다.

소재에 대한 거부감을 분명히 예상할 수 있었음에도

그대로 사용한 것은 불성실, 편의주의적, 무책임, 무능력하다는 생각이 든다.

사랑에 초점을 맞췄다며? 분명 전개를 위한 다른 방법도 있었을 거다. 

또한 '불륜'을 너무나 도구적으로만 사용하고 있는 것이 역설적으로 웃기다. 

눈 가리고 아웅하는 거나 다름없다.

 

그러니 이 영화를 좋게 보지 않는 자들에게

'불륜'의 시각에서 벗어나 이 영화를 봤으면 좋겠다, 라는 주제넘은 말을 악성 시네필들은 삼가줬음 좋겠다.

그래봤자 재미없는 영화일 뿐이다.

 

 

그리하여.

다분히 개인적인 감정. 이치에 맞지 않을 수 있는 논리. 등을 포함한 분노의 리뷰가 완성되었다.

정말 이젠 이런 류의 영화가 피곤하고

난 별로 재미없는데 너무 사방에서 올려치길래 써봤다.

커뮤를 해서 그런가보다 이런 걸 이제 교양인처럼 참지 못한다.

 

 

 

이거 보고 뭔가 좀 곡성 같은 영화도 떠오르고 해서 드는 생각인데.

한 줄 평도 마찬가지다. 한 줄 평은 '평론'이 아니다. 그냥 말장난이고 놀이라고 생각한다. 

 

그 놀이조차 적용할 수 있는 영화가 있고, 아닌 영화가 있다.

정말 한 줄로 아우를 수 있는 영화가 있는가하면

정말 특출난 부분, 또는 정말 그지같은 부분만 강조하여 쓸 수도 있다.

 

하지만 한줄 평의 작자가

이 영화의 어떤 부분에 대해 이 한 줄을 적었는지는 한 줄 평 속에서 밝혀지지 않는다.

영화를 직접 본 사람들만이 짐작하고 공감할 수 있을 뿐이다.

그렇다면 마치 이 한 줄에 이 영화의 모든 것이 담겨있는 양 착각하는 사람들이 생겨날 수 밖에 없다.

그건 그 사람들의 잘못이 아니냐고? 나도 그렇게 생각한다.

 

한 줄 평은 볼 가치가 그리 없는 그냥 찌끄레기일 뿐이기 때문이다. 굳이 그걸 믿을 필요가 없다.

그런데 이것이 사람들을 조종하고 제어한다. 

제대로 된 머리와 꼬리가 없는 글은 제대로 된 머리랑 꼬리가 없기 때문에 사람들을 현혹시킨다.

곡성의 그 해석놀이랑 왓챠피디아의 그 전문가놀이는 맥락이 같다고 생각한다. 

 

나한테 재미있다고 다른 사람들한테도 꼭 재미질 수는 없잖아.

남이 재미있어도 내가 재미없으면 재미없는 영화다.

여론에 휩쓸리지 말고 상 받았다고 올려치지 말고 그렇게 좀 살고 싶다. 

악성 시네필이 되려고 하지 말자. 예술에서조차 선민의식을 갖으려고 하지 말자.

이미 돼 버린 놈들은 내버려두자. 그렇지만 그 놈들의 감성으로 내 감성을 재단하지 말자.

 

"이런 영화가 흥행을 못 하고 자극적이고 말초적인 영화들이 장악할까봐 걱정된다."

"이런 퀄리티인데도 흥행을 못해? 관객들의 수준이 아쉽다."

 

영화는 상업예술이잖아? 

돈 써 달라고 절해도 시원찮을 새끼들이 감히 선민의식을 장착해버렸다. 

이해하기 어려운 영화에 죽어라 목 매달고 있지 말고

깔끔하게 무시하고 내 돈 내고 납득할 수 있는 재미있는 영화를 찾는 편이 좋은 것 같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