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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ㅃㄱㄲㄹㅁㄷㅈ

고객님, 상영 10분 후 세 편 연속 교환은 사실 곤란해요 2010-11-21 07:52:12

by 나탈리와맷데이먼 2024. 9. 21.

어제 토요일에는 사장님이 퇴근하시자마자 전화를 걸어,
조금 있다가 육촌 동생이 방문할 터이니 보고 싶어하는 영화 마음껏 틀어주라고 말씀하심.
음. 그래서 냉장고에서 포카리 꺼내먹는 것을 오늘은 약간 자제했다 :)

동생님은 내 또래였는데 두 명의 친구분과 함께 방문하셔서
밤 11시부터 새벽 4시까지 <모노폴리>,<프레데터>,<집나온남자들>을 보시고 눈 좀 붙이다가 6시에 나랑 작별인사했다.

훈남이었어. 그치. 배고프지 않으시냐며 먹을 것도 사주고. (감자맛 핫바랑 딸기 요거트. 묘한 매치....)



새벽 3시경에 내가 카운터에서 고독하고 잔잔하게 카프카를 읽는 사이, 
남자 고객님(아저씨)이 불쑥 들어오셔서 '여기 얼마나 해요?'라고 물어보시길래 '한 분에 기본 7,000원이세요'했다.

고개를 끄덕이며 영화를 고르는 것을 확인하고 다시 책에 눈을 떨어뜨렸는데,
'혹시 여기 삼류영화는 없어요?'라는 목소리가 들려와 난 좀 움찔.

삼류영화. 란 고런 걸 말하는 거겠지.
갖춰져 있긴 있다. 그런 걸 찾는 분들도 사실 은근히 많고. 
음. 그렇지만. 이상해.

하지만 위치를 알려드리기도 전에 이미 그 쪽 구석에 고개를 파묻고 있는 아저씨를 난 발견하였다.
술에 많이 취했는지 기우뚱기우둥 하면서도 찬찬히 살펴보고 있는 모습을 보며.

아, 난 깨달았어.  
그 묘한 움찔함은 다른 것이 아니라, '아저씨, 어째서 대학생 커플 이용률이 90%인 DVD방에 들어와 
삼류영화를 찾고 계셔요. 새벽에. 혼자. 술 취해서' 라는 안쓰러움이었나 보다.

아마 다른 DVD룸들도 그럴테지만,
고객님들이 예전에 본 영화라면서 시시콜콜 교체를 원하는 경우를 방지하기 위해
상영 시간이 어느 정도 경과하면 일정 교체금이 있다. (우리 DVD방은 10분 이후)

아저씨께서는 새 영화 상영 5분마다 뛰쳐나와서 너무 지루하다거나,
예전에 본 거였다고 한숨을 섞어가며 하소연을 하셨다.

"손님, 저희는 근처 대학생, 직장인 커플들이 주로 이용하는 업소여서
다수 취향에 맞는 영화를 준비해 놓을 수 밖에 없어요. 죄송합니다."

아저씨 표정이 '아무도 삼류영화를 안 본단 말이야?' 이 표정이었다.
그리고 정말로 그렇게 말씀하셨다. "다들 보잖아요, 그런 거"

"찾으시는 분도 계신데 극히 적어요. 그래서 새로운 것은 준비를 하기가 어렵네요."

기가 차다는 얼굴로 한숨을 쉬며 다른 영화를 고르시던 아저씨는,
1분마다 '요즘 삼류영화(이 단어 듣고 정말 신선) 없댔죠?' 물어보시다가 결국 하나를 찾아 다시 들어가셨다.


아저씨가 영화를 보고 나가시며 하신 말씀은
'죄송합니다, 고마워요. 근데 삼류영화도 좀 들여놓고 그래요. 요즘 볼 영화가 너무 없네요' 였다.

문이 닫히고 문득 로비를 찬찬히 둘러보자니,
벽을 뒤덮고 있는 수많은 최신 DVD들과, 아저씨가 내고 가신 꼬깃꼬깃한 천원짜리 일곱 장이 눈에 들어왔다.
 

아저씨. 맨 마지막 말씀은 저도 찬성이예요.